책 리뷰라고 하기에는 제대로 읽지도, 책이라고 칭하기도 힘들지만 너무나 맛있는 글이라 적지 않을수가 없었다. 90년대 나온 책. 내가 없었던 시절 그들이 느꼈을 변화들, 미래들이 나는 너무나 궁금하고 내가 미래를 생각할떄 좋은 근거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종로나 경의선 옛날 책방을 열심히 뒤져보고 싶다. 그 시대가 궁금하다. 사실은 내 미래가 궁금하기에.

필자도 수험생시절 아침 일찍 울려대는 자명종을 부숴버리고 싶을떄가 있었다. 인간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편리한 시계바늘에 오히려 철저히 묶여 쫓기다시피 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한창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부각되고 있다. 국제전화, 유무선 전화기 이동통신 그이 하나 나하나 가지고 사랑하는 둘이서 어디에 있는 서로와 대화할 수 있게 해주는 그 꿈의 정보통신도 시계바늘이 될 수 있다. 삐삐라고 불리는 무선호출기 자체는 참 편리하지만(차봤다! 진짜다!)
삐삐가 울리면 어디든 달려가야만 하는 사람에게는 삐삐는 곧 족쇄에 다름아닐 것이다. 기계의 반란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한 고도로 발달되어 가는 기계와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물리적인 힘을 뛰어넘는 기초적인 힘을 바탕으로 하고 인공센서와 인공뉴런체계에 의해 사고능력까지 겸비해, 이제 사이보다임의 현실화가 목전에 다가오는 현대의 상황에서 영화 터미네이터는 현대판 모던타임즈로서 탄생하였다.
기계를 통해 인간에게 다시 족쇄를 채우려는 자들은 누구인가? 누가 터미네이터를 우리들을 제거할 목적으로 파견하고 있는가? 혹자는 영화처럼 우리 자신이 터미네이터의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이 아직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기계에 대한 혐오증을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기계에 대한 컴플렉스는 단지 그 사람이 유달리 겁이 많다는 이유 때문일까? 영화에서처럼 현대화된 기계가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켜 인간을 죽이려고 한다면 그것은 무시무시한 폭력일것이다. 찰리 채플린이 모던타임즈에서 보여줬던 콘베이어 벨트의 폭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얼마전까지만도 인간이 휴일을 정해놓는다는것은 이미 그자체가 굶어죽기 딱 좋은 결정이었다. 농촌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옛날엔 비오는 날이 쉬는날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논에 물을 댄다든지 할 떄는 도롱이를 걸치고 일을 해야했고 쉬면서도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짜면서 쉴새없이 일해야 했지만 말이다. 또 겨울이면 누구나 휴일이 되었다. 농촌의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당신은 영국의 어딘가 있다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한 시계바늘이 몇바퀴 돌아 날짜판을 돌리고 표시되는 날짜가 벽에 걸린 달력에 색깔이 있는 곳에 이르면 휴일이라고 말한다.
현대에 와서 인간이 스스로 휴일을 정한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논라운 반란이다. 도시는 반란의 기지이다. 옛날같으면 새벽부터 한낮까지 자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해가 떠있는 낮동안이 아니면 어떤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떄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도시를 건설하고 전기와 전등을 통해 낮과 밤의 경계를 없앴다. 새로운 자연적 조건을 창출해낸 것이다.
기계는 인간에게 적합한 환경을 창출해내고 있다. 도시는 쉼없이 살아움직일 수 있다. 기계는 피로에 지치지 않고 인간에게 전등을 밝힐 전기를 계속 공급하고 있고, 제트엔진과 전동차는 당신이 잠깐 조는 사이에도 계속 당신을 태우고 달려가고 있다.
우리들 실재적인 삶은 천국과 지옥, 아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알 수 없는 그 어떤 마법으로 미쳐가고 있었다. 나는 나의 친구들의 장례식이 텔레비전 수상기를 통하여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순간에 세상의 불쾌, 고통, 공포, 연민, 증오, 복수를 생각하고 있었고, 어쩌면 모든 세계가 거기서 멈추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증오는 복수를 통해서만 자유로와지고 복수에 대한 열망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는 생동적인 활력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는 천국과 지옥, 빛과 어둠을 동시에 열수 있는 열쇠가 필요했다.
그러나 누가 적인가? 누구에게 증오를 느끼며 누구의 심장에 번개보다도 빠른 복수의 칼날을 꽂을 것인가? 이것이 나의 의문이었다. 죽음의 전사들에게 위대한 돌격의 나팔을 불게한 소대장, 중대장, 경찰서장, 경찰청장, 대통령인가? 아니면 화염병을 던진 젊은 학생들에게 복수를 해야 하는가? 이것을 알기 위하여 나는 기나긴 길을 걸어왔다.
그리하여 나는 여러가지 길을 우회하기도 하고 예기치 못하는 함정에 빠져들기도 했지만, 결국엔 최고점인 단순함과 명쾌함을 얻었다. 그것은 개인적인 변화나 부분적인 변화로써는 ‘우리의 비극은 멈추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간직하는 고통은 죽음의 공포로 나를 인도한다. 시간은 흐른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고통의 상처는 더 깊어지고 역겨운 악취를 더해간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모든 생의 줄거움과 아름다움은 참을 수 없는 생의 무게와 어둠으로 바뀌어간다. 그리하여 나는 절망으로 떨어지는 그 어둡고 긴 터널을 느낀다.
나 혹시 당신이 자살하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더욱 정확히 이야기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들은 이 어둠의 세계에서 수많은 고통과 슬픔을 인내하며 불쾌함으로 가득찬 이세계를 어찌하여 버티는가? 죽음의 세계로 향하는 열차의 티켓을 한 장 얻기 위하여 백여년이라는 지리한 줄서기를 침묵으로 버티면 지옥행 열차의 안락한 좌석을 차지할 수 있는가? 사랑과 우정이라는 미묘한 감성적 활동은 영원히 변함없는 투명한 색깔을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서로를 진정으로 인정한다는 단어를 쫓아 일생을 허비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남기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들은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어지고, 하나의 사건이나 행위는 연민을 구축하고, 지나간 과거의 죽은 그림자는 현재를 묶어두고, 자기억제는 ‘미련’에 휩싸이게 된다. 이것은 어디로부터 출발하는가? 나는 이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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